본문 바로가기
좋은 글

텅 빈 신발장을 바라보며

by naturedao 2020. 8. 20.

<'열린연단' 에세이 코너의 고려대 이승환 교수님의 글입니다. >

한 해 사이에 네 명의 가족들이 아내와 나 두 사람을 남겨두고 다 떠나버렸다. 아버님께서는 작년 이맘때쯤 노환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셨고, 어머니는 심해지는 치매를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워 전문 요양 시설로 모셔야만 했다. 아들은 그렇게도 고대하던 직장에 취직이 되어 남쪽 끝에 있는 지방 도시로 내려갔고, 딸은 통근 거리가 너무 멀어서 직장 가까이에 원룸을 얻어 독립해 나갔다. 가족들이 남기고 간 짐을 정리하다 보니,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이 봄날의 단꿈처럼 아스라이 가물거린다.


아버님의 흰색 운동화

신발장을 정리하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버님의 운동화였다. 쓸 만한 구두가 제법 여러 켤레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은 외출할 때면 꼭 이 운동화만을 고집하셨다. 엄숙한 느낌을 주는 짙은 정장에 두꺼운 쿠션이 달린 흰색 운동화라니. 너무도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워, 행여 사람들의 시선이 아버님 발 밑으로 향할까 봐 옆에서 모시는 내가 오히려 조바심을 내곤 하였다.

언젠가 주일 미사에 모셔다 드리는 길에 슬쩍 운을 떼어보았다. “정장 차림에는 구두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아버님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무릎이 아파. 허리도 안 좋고……·.” 하소연을 듣고서도 나는 아버님의 어색한 신발 차림이 못내 마뜩하지 않았다. 정장을 하고 나가실 때는 좀 불편하더라도 구두를 신으시면 좋으련만.


내 점잖은 트레킹화

아버님의 우스꽝스러운 신발을 이해하게 된 것은 내 무릎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연골이 닳아서 무릎 주위에 통증이 생기는 퇴행성 관절염이란다. 무릎이 아프면서 언제부턴가 나도 무릎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구두 대신 편한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줄 선 바지에 형광색 운동화를 신은 늙수그레한 남자들을 보아도 이제는 우습지가 않고, 보행등이 점멸하는 도로 한가운데서 절룩이며 허둥대는 노인네를 보아도 도대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모처럼 제자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주기 위해 정장 구두를 신고 나갔다가 무릎이 아파서 며칠 간 꼼짝 못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몇 켤레나 되는 신사화는 쓸데없이 신장만 차지하는 장식품이 되고 말았다. 아직은 몇 년 더 근무를 해야 하는 직장인으로, 요란한 색깔의 운동화는 아니다 싶어 밑창이 두툼한 트레킹화를 어렵사리 점잖은 색으로 구해 신었다. 대학원 수업을 하러 강의실로 이동하는데 건물 밖에서 마주친 제자 하나가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아니, 선생님! 등산 갔다 오세요?”

신발과 옷차림의 부조화를 지적하는 야유의 말인지, 정중해야 할 연구 공간에 트레킹화 차림으로 나타난 무례함을 나무라는 타박의 말인지 선뜻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했다. “이 신발이 무릎에 편한 것 같아서…….” 말을 마치고 나니 문득 야속함과 서러움이 교차한다. 앞으로 절대 등산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사 선생의 경고에 가뜩이나 서러워하고 있었는데, 자주 얼굴을 접하고 지내는 제자마저 나의 아픔을 몰라주다니. 구두 신기를 권유하는 자식의 말을 듣고, 아버님께서도 내가 느낀 것과 똑같은 야속함을 느끼셨으리라.


아들의 중() 등산화

아들이 갑작스레 지방에 있는 연구원에 취직이 되어 일단 그곳 기숙사에 입주하게 되었다. 서둘러서 짐을 챙기다 행여 빠뜨린 물건이 있는지 살피다 보니 신장 구석에 숨어 있던 중() 등산화 한 켤레가 눈에 들어온다. 2010년 2월에 나와 함께 히말라야 산맥의 안나푸르나를 등반할 때 아들이 신었던 신발이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그는 등산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만년설로 뒤덮인 고산 지대에 아버지를 혼자 보내는 일이 마음에 걸렸는지 기꺼이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 지대를 하염없이 걸으며, 뼈를 깎는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말없이 아빠의 건강을 염려해주는 아들의 시선이 등반 기간 내내 등 뒤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이삿짐을 차에 싣고 혼자 수백km를 운전해서 내려가게 하는 일이 영 마음에 걸려, 한사코 마다하는 아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내가 동행하기로 했다. 막히는 고속도로를 대여섯 시간이나 달려서 기숙사에 도착하여 짐을 부리고 나니, 아들은 나에게 빨리 서울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성화를 부린다. 불 같은 재촉에 못 이겨 예약해놓았던 저녁 차표를 취소하고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차표를 끊어 서울로 향했다.

등을 떠밀려서 기차에 오르고 나니 문득 대학교 2학년 때 읽었던 주쯔칭(朱自淸)의 단편 「뒷모습()」이 생각난다. 북경에서 유학하던 아들이 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남경 근처의 고향에 내려왔다 가는 길에, 아버지는 먼 길을 떠나는 아들을 걱정하며 한사코 기차역까지 따라 나선다. 먼 길을 떠나는 아들에게 뭐라도 챙겨주기 위해, 아버지는 플랫폼을 뛰어내려 철길을 가로질러서 간신히 감귤 몇 알을 구해다가 출발 직전의 아들에게 건네준다. 촌스러운 마고자 차림의 중늙은이가 불어난 나잇살을 감당치 못하여 뒤뚱거리면서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서, 명문대 유학생으로 우쭐함에 젖어 있던 아들은 문득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절룩이는 다리로 기차에 오르는 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딸의 유행 지난 고급 운동화

신발장을 정리하며 아내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망설였던 물건은 7년 전에 딸아이가 재수할 때 사주었던 고급 운동화다. 유학 생활 때문에 늦둥이로 낳아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아이가 재수생이 되어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학원과 집 사이를 오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집안 형편에도 맞지 않는 비싼 운동화를 사주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취직해서 돈을 번답시고 그따위 유행 지난 운동화는 내팽개치고 간 모양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딸아이가 책장에 남기고 간 어린 시절의 숙제장과 자료철을 넘기면서 아내는 끝내 섭섭한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이제 독립해서 나가면 시집을 갈지언정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꼼꼼하고 착실한 아이인데, 그동안 방 안 치운다고 괜히 나무랐나 보다며 뒤늦은 후회를 한다. 열 달씩이나 뱃속에 품고 있다가 살을 찢는 아픔을 참고 낳은 자식을 떠나보내는 어미의 마음을 수컷인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을까마는, 덩달아 먹먹해지는 코맹맹이 소리를 미세먼지 탓으로 돌리며 혼자 술잔을 들이키고 말았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의 마음은 어떠할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텅 빈 신발장을 바라보며

가족들이 남기고 간 짐을 정리하고 나니 우리 집 신발장이 이렇게 넓은 줄은 미처 몰랐다. 쓸모없게 된 내 등산화와 정장 구두마저 없애면 너무 휑할 것 같다며 아내가 우선은 그냥 두자고 한다. 가족들이 떠나버린 것도 서운한데, 남편의 건각() 시절 추억마저 내다버리기가 내심 아쉬웠나 보다. 시안(西) 박물관의 황토색 도기 하나에 새겨져 있던 시 구절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둥지를 떠나는 새는 뒤돌아보지 않지만,
떠나보내는 어미의 눈은 아기 새의 등을 떠나지 않는다네.
(, )

우리 또한 그러할 것이다. 젊은 시절 내 자신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 곳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 자립하였듯이, 나의 자식들 또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갈 것이다. 나를 떠나보냈던 부모님의 눈시울이 항상 근심으로 그득했듯이, 자식을 지켜보는 나와 아내의 눈길 또한 그러할 것이다. 새들은 자기의 행복을 찾아 창공으로 비상하는데, 황혼녘의 석양은 왜 이리 붉기만 한지…….

 

출처: 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135692&rid=253

댓글